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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민예품엔 서민애환 담겼죠." 김의광 관장님 인터뷰

관리자 │ 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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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에 우연히 외국 지인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 집에 한국의 전통민속품이 가득 진열돼 있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 수집한 목인(木人) 이 벌써 2000여점이 됐습니다. 이들만을 따로 전시할 ‘목인 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입니다.”

목인 수집가로 유명한 김의광(55) 장원산업 회장은 ‘목인 박물관’건립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목인은 ‘나무로 만든 사람 모양의 조각’을 뜻하는 것으로, 목우(木偶)라고도 부른다.

김 회장이 민예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성년이 된 이후였다. 그는 1970년대 중반 서울의 한 외국인 집을 방문했다 집안 가득히 놓여 있는 우리 민예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외국인이 우리 민예품에 이처럼 지대한 관심을 갖고 수집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그날 이후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중앙시장·장안동·인사동 등 서울의 구석구석을 뒤지며 기와·찻잔·석인·목인 등을 열정적으로 수집했다.

“각종 형태의 목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목인마다 시대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비록 생명이 없는 것이지만, 그 형상 하나하나마다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기도 하지요.”

그가 소장하고 있는 목인은 각양각색이다. 염라대왕의 명부를 들고 서 있는 도깨비, 호랑이를 탄 선비, 호적을 들고 서 있는 여인, 남사당패 재인들 등등.

그가 목인의 매력에 빠진 것은 그 질박함 때문이다. 목인은 예술품처럼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않다. 비록 투박하고 거칠어도 목인에는 가공되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 그래서 김 회장은 목인을 ‘조선 백자’에 비유한다.

“공예품이 청자라면 목인은 백자입니다. 청자가 귀족의 애장품이라면 목인은 민초의 삶 그 자체이지요. 목인에서는 서민의 애환과 고통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목인은 주로 상여의 난간을 장식하던 부속품이다. 요즘도 시골 장례식에 가면 종이꽃을 장식한 ‘꽃상여’를 종종 구경할 수 있다.

“상여에 쓰인 목인에는 시대상도 반영돼 있습니다. 조선 말기에는 장군상을, 일제시대 때는 순사(巡査)상을, 독립 이후에는 국군상을 주로 썼습니다. 따라서 목인을 보면 우리의 문화와 풍습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알 수 있죠. 표현도 다양하지요.”

개인 컬렉터 수준에서 시작한 목인 수집이 ‘박물관’을 건립할 정도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1990년.

“제가 목인 수집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한 목인 수집가가 목인 200여개를 구입할 의향이 있느냐는 제의를 해왔는데, 처음에는 망설여지더군요. 금액도 금액이지만 이것을 사들이면 취미생활이 아니라 개인 박물관 정도는 세워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이 들었어요.” 당시 망설이던 김 회장에게 힘을 준 사람은 부인 서혜숙(54)씨다. 처음에는 김 회장 혼자 다니며 목인을 수집했지만 지금은 부부가 함께 다닌다.

김 회장은 “사람에게 적재적소(適材適所)가 있듯 민예품에도 제자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목인박물관 건립에 남다른 애착이 있는 것도 목인들에게 ‘적소’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인 셈이다.

김 회장의 이 같은 ‘적재적소 철학’은 최근 돌아가신 부친의 가르침 때문이다. 김 회장의 부친은 상공·내무·교통부장관 등을 지낸 김일환씨로, 부친이 생전에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로부터 선물받은 ‘십장생 병품’을 적소 차원에서 이화여대 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박석규기자/skpark@segye.com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0039097?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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