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목인박물관에서 보는 북한산 풍광 관리자 │ 2025-04-19 HIT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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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세계의 내로라하는 여러 유명 도시들을 둘러보고 나니까 근래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서울은 바위 기운[巖氣]을 받는 도시다.’ 서울을 둘러싼 바위산들이 주는 장중한 기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종로구 부암동의 인왕산 자락에 있는 목인박물관이다. 부암동 주민센터에서 500m쯤 언덕길을 올라가면 있다. 박물관 마당에서 바라다보면 오른쪽의 백악산이 보인다. 여기에서부터 형제봉, 제일 높은 봉우리인 보현봉, 문수봉, 나한봉, 승가봉,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 가장 왼쪽에 족두리봉이 보인다. 돌산 병풍처럼 박물관 앞에 펼쳐져 있는 형국이다. 목인박물관의 벤치에 앉아서 이 바위산의 장중한 풍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국과 서울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난다. 풍광에서 행복감이 느껴지고 품격이 나온다. 박물관장 김의광(71)의 집안 내력에는 한국 현대사의 명암과 굴곡이 그대로 담겨 있다. 조부인 김명제(1884~1950)는 서울 상동교회를 다녔다. 1911년 데라우치 총독 암살 모의 사건인 '105인 사건'에 가담하였다가 일경의 추적을 피해서 만주로 피신하였다. 부친 김일환(1914~2001)은 아버지를 따라가서 6세부터 만주에서 성장하였다. 하얼빈에서 고교 재학 시절 통역원으로 강제 징집되어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갔으며 박정희 대통령 3년 선배쯤 된다. 해방 후에는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였고, 육군 대령 시절에 6·25가 터졌다. 서울이 인민군에 함락되기 직전인 6월 27일 오전 10시부터 한국은행 지하 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금괴와 은괴를 트럭에 싣고 진해로 옮기는 작업을 주도하였다. 금괴는 1070㎏, 은괴는 2513㎏이었다. 트럭 2대에 실었다. 금궤를 담은 궤짝을 보통 물건으로 위장하기 위하여 광목과 가마니로 거듭 포장하였다고 한다. 금괴 상자는 총 89개였다. 서울을 점령한 공산군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한국은행 금괴였다. 김일환이 이미 반출해간 사실을 알고 "김일환이 금덩어리를 약탈해 갔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경주박물관에서도 신라 금관을 포함한 국보 15점, 유물 124점을 반출하여 금괴와 함께 미국 은행으로 보냈다. 이 금괴들은 1955년 한국이 IMF에 가입할 때 출자금으로 충당됐다. 김의광 관장 아내 서혜숙은 태평양 서성환 창업자 둘째 딸이다. “중매로 했냐”고 물어보니까,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연애했다고 한다. 목인문화재단 설립은 서혜숙이 후원을 하고 주도하였다. 박물관의 3000여 평 정원과 목상여(木喪輿), 문관석, 무관석, 동자석, 민불 등은 볼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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